지휘자로 더 친숙한 빅토르 데 사바타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붙인 극부수음악을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음반이다. 이미 발레 <1001 야화>, 오페라 <바위>, 교향시 <유벤투스 등의 작품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연상시키는 후기 낭만주의 성향의 탁월한 감각을 선보였던 사바타의 1934년 작품으로, 베니스의 다채로운 풍광과, 셰익스피어의 극적 구조에 어우러지는 풍성한 음악적 향취가 매력적인 걸작이 아닐 수 없다.
20세기 전반을 지배한 위대한 지휘자 중 하나였던 빅토르 데 사바타를 작곡가라는 범주와 연관지어 생각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는 실제로 작곡도 했으며 몇몇 곡은 출판되기도 했다. 그 중 하나가 여기 소개할 ‘베니스의 상인’이다.
연주 얘기를 하기에 앞서, 불평할 게 좀 있다. 아무리 좋게 봐도 음반 표지는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다. 곡 제목은 그렇다 해도,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합창단 모두 이탈리아어로만 표기되어 있는 것은 좀 지나친 처사다 싶다. 영어 표기는 음반 뒷면에 자못 자랑스럽게 적힌 ‘세계 최초 녹음’ 문구와 ‘Made in EU’ 정도가 고작이다. 내지를 살펴봐도, 영미권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작품 줄거리를 제외하면 이탈리아어 일색이다. 더구나 처음 보는 사람은 이 곡이 오페라인지 극부수음악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 있다(실제로는 극부수음악인데, 표지에 적힌 ‘Affreschi Musicali’, 즉 ‘음악적 프레스코화’라는 부제만으로는 뭐가 뭔지 알 길이 없다).
곡 자체는 전형적인 후기낭만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짜임새는 그리 복잡하지 않으나 화려한 색채감을 추구하는 것이나 윈드머신을 비롯한 지극히 다채로운 관현악 편성(만돌린과 쳄발로가 사용된 것은 희곡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이상할 것은 없지만)을 보면 데 사바타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양아들’이라고 불렸다는 얘기가 그리 빗나간 지적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악상 자체는 다분히 멜로드라마 스타일이어서 처음 듣기에도 아무런 불편은 없으나 계속 듣기는 좀 거북한 면이 있다. 말라가 필하모닉의 연주는 세심하고 정성들인 편이며 합창 역시 아주 명징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보아 신비로운 분위기(사실 사바타는 이를 다소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를 잘 살려냈다. 어떻게 보더라도 호기심의 대상 이상의 것이 되기에는 역부족일 듯하나, 기분 전환이라는 면에서 보면 나쁘지 않을 음반이다. 녹음은 양호한 수준이다.
- 월간 La Musica - 황진규
[ 수록곡 ]
1. Il Mercante Di Venezi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