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천재적 능력을 인정받으며 진은숙을 우리시대를 이끌 중요 작곡가 5인안에 들게 했던 초기 걸작 <말의 유희(문자퍼즐)>을 비롯하여, 아르스노바 콘서트를 통해 낯익은 <기계적 환상곡>과 <씨>, 그리고 <이중 협주곡>에 이르는, 빼어난 음악의 색채감과 유연한 소리의 미학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대표작을 만나는 음반이다. 그녀와 끊임없이 함께 작업하며 가장 완벽한 사운드를 이루어내 온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중요 녹음들로 강렬한 색채미학을 만끽하게 된다.
진은숙의 새로운 앨범이 카이로스에서 발매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어느 정도는 독일어권의 아방가르드 음악계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빈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카이로스는 오늘날의 아방가르드 음악을 위해 세워진 레이블로, 현재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곡가를 중심으로 음반을 제작하고 있다. 진은숙의 음반은 카이로스에서 발매되는 첫 한국인 작곡가의 음반이기도 하다.
하지만 솔직히 아쉬움이 더 많다. 이 음반에 수록된 녹음은 이미 DG에서 발매된 적이 있었던 음원이기 때문이다. 그저 곡목의 순서가 바뀌고 마르틴 데믈러의 내지 해설에 약간의 첨삭이 있을 뿐이어서, 콘텐츠의 입장에서 보자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재발매이다(더 비싸졌다). 2011년에 발매한 만큼 같은 곡이라도 다른 연주를 수록하거나 최근에 작곡된 다른 작품들이 수록되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십분 양보해서 긍정적으로 보자면, DG의 음반은 더 이상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만약 그 음반을 갖고 있지 않다면 ‘다행스럽게도’ 진은숙의 이 작품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또다시 주어진 것이기도 하다.
이 음반은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약 10년간에 걸친 주요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이후 진은숙은 여러 작품들을 통해 다양한 시도와 변화를 꾀해왔는데, 이 음반에 수록된 작품들은 최근 10년간의 활동을 보다 설득력 있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내한다. 비교적 초기작인 ‘언어유희’(1991/93)에서는 진은숙의 최대의 화제작이었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7)와 또 다른 성악 작품인 ‘칸타트릭스 소프라니카’(2005)의 아이디어 차원에서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다. ‘기계적 환상곡’(1994/97)은 진은숙이 악기를 활용하는 스타일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그로마이어 상을 수상하여 진은숙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바이올린 협주곡’(2001)의 색체적인 오케스트레이션과 연결된다. 또한 ‘이중 협주곡’(2002)은 ‘바이올린 협주곡’보다 1년 후에 작곡된 곡으로서,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보여주었던 다양한 타악기의 불꽃들을 전면에 배치하여 열정적으로 타오르게 한다. 앙상블과 전자음악을 위한 ‘씨’(1997/98)는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작품으로, 전자음악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중구속?’(2007)이 떠오르지만 내용의 측면에서는 공통점이 많지는 않다. 진은숙은 최근 들어 전자음악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기에 ‘씨’는 젊은 날의 추억으로 비춰진다.
- 월간 La Musica - 송주호
[ 수록곡 ]
1. Fantaisie Mecanique
2. Xi
3. Akrostichon - Wortspiel (3-9)
4. Double Concert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