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1940년 초에 일본국 설립 2,600년(BC660)을 기념하여 자국의 작곡가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여러 작곡가들에게도 작곡을 의뢰했다.
그에 응한 작곡가가 R.슈트라우스이다.
현재 그 작품은 거의 연주되지 않는다고 한다.
(TV 뉴스에서 연주 기록 필름이 발견되어 방송 되었던 같기도 함)
브리튼도 작품을 위촉받았는데 그 당시 그의 나이 26세였다.
그는 처음에 어느 나라인지 모르고 작품 의뢰를 받았고
작곡을 하기로 수락한 후에 일본이라는 것을 알았다.
브리튼은 평화주의자이고 반전주의자였으며
2차대전을 의식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해 절반을 미국에서 생활하던 브리튼은 전쟁을 반대하는 그의 생각을
작품에 표현하기 위해서 제목을 진혼 교향곡이라고 붙였고
죽은 자를 위한 로마 가톨릭 미사에서 3개의 악장을 채택했다.
작품의 제목과 각 악장의 타이틀은 일본에 전달 되었고
처음에는 허락했지만 작품이 완성되자 거부했다.
일본 외교부는 영국 카운터파트에게 공식적인 비난 성명서을 발표하면서
기독교 전례의 사용은 "모욕적"이라고 항의했다.
그래서 결국 이 작품은 1941년 3월 31일 존 바비롤리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의 연주로 초연되었고 일본에 대한 언급은 없어졌으며 간단히 "부모님을 기억하며"라고 썼다.
그해 말에 그 당시 악의 축 동매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대항하여
영국과 미국에서 "Plea for Peace"라는 콘서트로서 초연되었다.
각 악장은 다음과 같은 제목과 부제가 있다.
1. Lacrymosa - a slow, marching lament
2. Dies irae - a form of Dance of Death
3. Requiem aeternam - the final resolution
일본의 패망를 부르는 브리튼의 의도 같기도 하며
그 당시에 희생된 소중한 생명을 미리 위로하는 듯 하다.
특히 첫 곡의 강렬한 팀파니로 시작되는 부분이 인상적인데
너무나 큰 슬픔에 모든 것을 던지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