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선곡이 있다는 것이 저를 즐겁게 하는군요. 사실 베토벤 하면 5번 운명교향곡이나 9번 합창교향곡 그리고 에그몬트 서곡처럼 웅장함과 불굴과 불멸의 정신이 가득한 그런 분위기가 떠오르기 쉽습니다. 총 연주시간이 154분이니까 두 시간 하고도 30분이 더 담긴 어마어마한 음반입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차 한 잔 끓여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에 안성맞춤인 음악입니다. 베토벤의 여러 음악 가운데에서 느린 아다지오와 라르고 부분을 대부분 따왔습니다. CD 1의 첫 트랙이 문라이트(Moon Light) 피아노 소나타네요. 학생 시절에 멋도 모른 채 흥얼거리거나 그나마 유일하게 알아듣는 피아노 곡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죠.(학교도 안 들어간 둘째 딸이 엊그제 베토벤의 비창을 연습한다고 자랑하더군요.)

속지를 보면 데카에서 코랄 아다지오, 바로크 아다지오, 하면서 15개 음반을 아디지오 음반으로 내놓았네요. 대단합니다.(음, 크리스마스 아다지오도 있고 기타 아다지오, 이브닝 아다지오도 눈에 띄는군요.) 기획력이 돋보이는 음반입니다. 지휘자나 연주자들도 대부분 쟁쟁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쉬케나지, 그리뮉스, 게오르그 솔티, 엘리아우 인발, 클라우디오 아라우, 야노스 스타커, 이작 펄만, 박하우스, 이무지치 등등 고전이 되어버린 거장들과 현존하는 거장들의 이름이 총 망라된 보물선집입니다. 음악을 분석하지 않고 그저 하루의 피로를 풀며 릴랙스(음반 표지에 적힌 표현) 하기에 좋습니다. 만약 욕탕 안에서 이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클래식을 처음 접할 때, 세미 클래식이라는 가벼운 음악을 찾기도 했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르네요. 그런 세미 클래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내공을 가진 음악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혼을 참으로 편안하게 휴식시켜 주는 아름다운 음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