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협주곡 2번의 웅장한 심포니가 시작됩니다. 1937년 녹음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습니다. 잠시 뒤 엘리 나이의 담백한 피아노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20세기 초반의 여성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날렸지만,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그녀는 나치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모든 음반사로부터 외면을 당했다고 합니다. 최근 그녀의 음반들이 알음알음 발견되어 재발매되고 있는데, 그녀는 베토벤의 열렬한 숭배자였습니다. 그랬던 그녀였기에 이 음반에 그녀가 직접 육성으로 녹음한 베토벤의 유서낭독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세기를 건너 뛴 지금의 자리에서 비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베토벤의 유서를 듣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은 피아노가 아니라 하나의 영혼이요 가슴의 울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음반을 사는 것은 그녀의 영혼까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행운이요 축복입니다. 어떻게 9천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그 값을 치룰 수 있단 말인가요.

본 음반은 피아노 협주곡 2번 B flat major와 피아노 3중주 1번 D minor을 담고 있는데, 이는 각각 1937년과 1938년 베를린에서 녹음된 것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베토벤의 아다지오 칸타빌레 소나타 op 13번이 1936년 베를린에서 녹음반이 담겨 있고, 마지막으로 1936년 녹음된 베토벤의 유서를 육성으로 낭독하는 트랙이 5분 가량 들어 있습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여류 피아니스트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연주한 원조로 자리매김을 하는 엘리 나이는 빌헬름 켐프가 자신의 모델로 추앙했던 베토벤 연주를 맛깔나게 들려줍니다. 거칠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담백하고 소박하며 깔끔한 그녀만의 느낌으로 베토벤을 연주합니다. 그러한 그녀의 연주법이 오히려 거칠고 웅장하게 건반을 두드려대는 피아노 음반을 선호하는 분들에게는 그다지 강렬하게 다가가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이트에서는 엘리나이의 피아노 전집도 발매되어 있습니다. 현재 파인에서는 어느새 이 음반도 '재고없음'이 되었고 엘리나이로 검색하여 나오는 3개 음반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의 음반만 구매 가능한 상태입니다.

엘리나이에 대한 정보를 많이 찾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언제 태어났는지, 이 음반이 몇 살 때의 음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사진에 나오는 그녀가 할머니의 모습이고 속지에 살짝 나오는 모습은 50대 후반의 모습 같기도 합니다.

독일에서 2003년에 디지털 리마스터링(ADD)한 음반입니다. 뛰어난 음질은 아니지만 1936년에 연주한 것임을 감안한다면 듣기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엘리 나이 이후의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많긴 하지만 베토벤 추앙자인 그녀의 연주를 접해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