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심란해진 마음 때문에 이 음반이 더 끌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음반을 구매하여 듣기 시작한 지는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만 이제서야 감상기를 올립니다.(어느새 재고없음으로 되어 있네요.)

사실 처음에는 성탄절 캐롤의 조금 변형된(약간 경건함이 가미된) 그런 음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아주 경건한 종교적 합창음악이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면서도 우리의 국악이 아직 어색한 것처럼, 기독교인이면서도 초기 바로크의 종교음악(합창곡)은 그게 그 음악 같고 해서 크게 다가오지가 않았습니다.

만약 이 음반이 바로크 종교음악인 줄 알았더라면 구매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음반 광고글에 '오르간'과 '합창곡'이라는, 제가 좋아하는 두 단어가 들어가 있던 탓에 다른 음반들 틈에 끼여 함께 구매하게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기대와 달라서, 제가 생각한 캐롤곡이 아니어서 실망한 탓에 한 번 들어보고는 그냥 어느 음반들 사이에 끼여 있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이 음반이 생각난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갑자기 이 음악들이 저를 평화롭게 이끄는 것입니다. 아, 이렇게 아늑하게 나의 영혼을 어루만져주다니.

사실 제가 좋아하는 합창곡 스타일은 베토벤 9번 교향곡이나, 말러 8번 교향곡 같이 천지를 포효하듯 거대한 파장이 나를 산맥처럼 감싸도는 웅장한 그런 곡입니다. 거기에 오르간이 모든 걸 감싸 안는 듯 받쳐주면 금상첨화겠지요.

그런데, 그런 합창곡이 아니고, 고작 32명의 합창단이 부르는 자그마한 합창곡임에도 나의 영혼은 어느새 그들과 동화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쓰고 가는 모자를 벗기기 위해 바람이냐 햇빛이냐의 우화에서, 뜨거운 햇빛으로 스스로 모자를 벗기게 만드는 그런 것처럼, 나의 영혼은 스스로 모자를 벗고 합창곡에 경의를 표하고 있었습니다.

합창을 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32명은 합창곡을 부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숫자입니다. 중창단 규모보다는 조금 크지만, 거의 중창단 규모이지요. 나의 영혼을 감싸는 이 음악들은 지루하지도 않으며 얕지도 않습니다. 여러 사람이 부르면서도 한 사람이 부르는 것처럼 뇌파를 조정합니다. 천사 같은 사람의 목소리와 두툼한 오르간은 세상에 찌들고 오염된 나의 영혼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줍니다. 오르간과 섞여 나오는 트롬본의 음감도 영혼 정화에 한 몫을 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기막힌 화음은 찰랑찰랑 차오르지만 결코 넘치지 않는 물결처럼 하루의 일상을 마무리합니다. 저녁 시간, 모든 할 일을 마치고, 은은한 저녁불 아래 이 음반을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줄 것입니다.

속지에는 20쪽에 걸쳐 자세한 설명과 가사 및 영어번역본이 실려 있습니다.
(감상기에서 그림을 올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개발자님께 감사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