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론 및 HD1의 모양새
요즘 하이파이를 접고 책상의 서브 시스템을 꾸미는데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사진처럼 사운드포럼의 골리앗1, 오야이데 PA-02 인터, 트리니티 mk2 파워케이블 정도로
구성을 한 시스템인데, 상당히 괜찮은 가격대 성능비가 나와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덤으로 신목도 몇개 붙여주고.. 그러나 문제는 소스기기였습니다. 서브 시스템에 DAC 달린
CDP를 붙이기에는 좀 낭비 같고 그렇다고 사카를 쓰자니 약간 모자란 것 같고..
옛날에 여러가지 사카를 써본 경험으론 온쿄 정도의 급은 되야 음악을 들을만하다고
생각했기에 당연히(?) 그 레벨 중에서 제 취향에 맞는 온쿄를 물려 쓰고 있었습니다.
온쿄, 물론 사운드카드의 레벨에서는 충분히 뛰어난 소리를 들려주는 놈입니다. 괜찮은
해상력에 약간 부드럽고 풍부한 느낌의 소리 등등.. 취향에 따라 약간 갈릴 수도 있겠지만요.
하지만 이건 하이파이의 기준에서 보자면 멍청하고 답답한 소리입니다. 해상력도 별로고
소리의 질감이 그 풍성함에 묻혀서 두리뭉실하게 죽어버리고.. 음의 예리함도 무디고..
한마디로 스피커 앞에 두꺼운 빌로드 커튼을 두겹 정도 치고 듣는 그런 느낌이지요.
신품가 9만원대의 온쿄에 너무 큰 기대를 해서도 곤란하고, 저 역시 그 정도에서 만족하고
잘 듣고 있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캐럿 HD1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UD1은 이미 나왔을 때
외장형 DAC이라는 것에 한번 관심을 가졌지만, 상대적으로 부실해 보이는 내부와 빈약한
전원의 USB DAC이라는 것 때문에 관심을 끊고 있었던 차에 HD1이 나온 겁니다. UD1에
비해 상대적으로 튼실한 내부에 생각보다 올라가지 않은 가격에 한번 들어나볼까? 하는
심정으로 주문을 했습니다.
궁금한 맘에 퀵으로 땡겨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HD1을 받아본 첫 소감은 '조낸 작네?'
인터케이블의 뻣뻣함에 이리 뒤집어지고 저리 뒤집어질 정도로 작고 가볍습니다.
케이스는 상당히 튼튼해보이고 고급스럽습니다. 사이즈 상 뒷면의 단자 간격이 너무
여유가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만하면 괜찮은 마무리 같습니다.
덤으로 들어있는 밑에 붙일 수 있는 3M 투명 고무발은 센스.. ㅎㅎ
- 외관은 그럭저럭 괜찮군요! 그럼 음질은?
오오.. 생각 이상입니다.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제작사의 권장대로
한 2~3일 끄지 않고 계속 음악을 돌려놨더니 아주 마음에 드는 소리가 나옵니다.
다만 기본적인 볼륨이 좀 많이 낮게 설정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청감적으로 느끼는 소리의
차이가 볼륨의 차이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왜 이렇게 했는지 의문마저
들 정도입니다. 이 DAC의 목표가 고급 사운드카드 또는 PC-FI 유저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PC의 사운드 볼륨과 앰프의 볼륨의 조절폭을 생각해보면 기본 볼륨을
한 50% 정도 올려도 무난할 것 같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음질 애기를!
가장 두드러지게 느낀게 전체적으로 음이 고급스럽습니다. 기존 사카들의 소리가 길 가에서
파는 100원짜리 밍밍한 싸구려 초콜렛이라면 HD1은 정성들여 만든 딱딱한 고급 초콜렛이
연상이 됩니다. 왜 이런 비유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_-;;
그리고 특정 대역대를 부스트시킨다거나 한 쪽에 치우치거나 하지 않는 적절한 소리 밸런스를
갖추고 있습니다. 음의 두께감 역시 지나치게 두껍다거나 얇지 않고 딱 적당한 느낌입니다.
부드러운 맛으로 소리를 덮어버리는 온쿄에 비해 보다 정확하고 리얼한 질감을 보여줍니다.
이 질감이라는게 단순히 비단같은 부드러움만이 있는게 아니고 때로는 거친 맛도 잘 표현해야
좋은 것인데 그 점에서 HD1은 충분히 합격입니다. 음의 잔향이나 여운도 잘 살아나는군요.
음장감도 수준급으로 펼쳐주는데 폭이나 넓이는 크진 않지만 악기나 보컬의 음상을 그 사이의
여백이 느껴질 정도로 제법 정확하게 펼쳐주는 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HD1의 소리 특징은 '정확하고 중립적'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강렬하게 찌르는 소리는 아니고, 풍성하게 채워주는 소리도 아니라는 애기입니다.
이런 성질 때문에 어떤 소스를 들어도 특별히 가리는 것이 없습니다. 피시 사운드 레벨에서는
어느 한 쪽이 좋다 싶으면 꼭 하나가 부족한 특성이 있지만 HD1은 별로 그런 느낌이 없군요.
취향에 따라서는 온쿄와 비교해 풍성함이 떨어지고 저역의 양감도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어느정도 왜곡된 소리보다는 제대로 기본이 된 소리를 들려줍니다.
물론 음의 밸런스나 질감, 기타 등등이 중립적이라고 해서 아예 성향 자체가 없는 건 아닙니다.
간단하게 성향을 표현하자면 전체적으로 약간 밝은 음색, 음의 착색이 거의 없다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정확하고, 약간 양감이 절제된 탄탄한 소리입니다. 스피드도 빠르고요.
에이프릴 사운드의 느낌이 약간 나지만 그것보다는 좀 더 중립적이고 다듬어진 소리입니다.
아, 물론 음색만의 애기입니다. 200se를 들어본지 몇년이 지나긴 했지만 시스템의 장악력, 음장감,
해상력, 음의 박력 등등 모든 면에서 200se와는 제법 차이가 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덤비면 떡실신! 가격 차이가 얼만데.. 당연하겠죠? -_-;;
- 그럼 단점이 전혀 없는 킹왕짱 DAC이란 말이냐?
그건 아닙니다. 음질적인 면에서는 뛰어나지만, 기계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는 약간 불안정한 것 같습니다.
과연 이게 저만에 국한한 사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제가 발견한 오류(?)만 써보겠습니다.
1. 인터케이블 좀 움직였더니만 툭 소리가 나면서 잠깐 먹통이 됩니다. 살짝 건드리는 정도로 그런 증상이
생기진 않고 케이블을 손으로 잡고 좀 움직이면 그렇게 됩니다. 다시 플레이어인 푸바에서 재생을 하면
다시 소리가 나긴 합니다만 뭐죠 이건? 인터케이블 연결한 채로 휘둘러서 DAC으로 모기라도 때려잡을 수
있어야 정상 아닌가요? -_-;
2. 정전압 어댑터를 꼽는 구멍이 깊이가 얇아서 끝까지 꼽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시 어댑터 선을 흔들면
먹통이 됩니다. 이게 꽤 심각한 문제 같습니다. 절반 정도밖에 꼽히지 않아서 1번보다 더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 같습니다. 1번과 똑같이 다시 재생하면 되긴 됩니다. 그리고 USB가 꼽힌 채로 어댑터를 꼽거나 뺐을 때
역시 마찬가지 증상이 생깁니다.
3. 에이징을 위해 밤에 잠 들 때 음악을 켜놓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음악이 멈춰 있습니다. 다시 재생하면
역시 다시 나옵니다. 그 후엔 제가 컴퓨터를 쓰고 있을 때 음악이 나오다가 안 나오는 증상은 없긴 했지만..
4. USB 케이블을 동작 중에 뽑으면 퍽 소리가 납니다. 마찬가지로 컴퓨터를 끄고 킬 때 스피커에서 퍽 소리가
납니다. 온쿄 사카에서는 아예 muting 회로를 넣어서 컴퓨터 동작 시에 2~3초간 소리를 차단하는 기능이
있다고 들었는데, HD1은 그런게 없어선지 퍽 소리가 납니다. 이게 음질적으로 더 유리하기도 하고, 끄기 전에
DAC 앞의 레버를 폰 쪽으로 올려놓으면 차단되긴 하지만 약간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신경 써야 될 점이 하나
늘어난 것이니까요.
DAC의 특성상 한번 자리 잡으면 움직일 이유는 없지만 PC-FI용이 아니라 휴대용으로 여기저기 옮겨서
쓰시는 분께는 위에 언급한 부분이 지대한 장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케이블을
좀 심하게 건드리거나 하면 퍽! ㅡㅡ;
- 결론
마지막에 몇몇 단점을 언급하긴 했지만, 간단하게 결론을 말해보자면 음질적인 면에서는
10만원이라는 돈값은 충분히 하고도 남는 소리입니다. 취향에 따라서 약간 엇갈릴 수도 있겠지만,
피시스피커의 레벨을 떠나서 애기해보자면 기본적인 소리의 퀼리티가 온쿄보단 한 단계 위라는 생각입니다.
USB 전원이라는 한계로 인해 하이파이 CDP처럼 힘있게 시스템을 장악하면서 나와주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온쿄 SE-90PCI와 맞짱 뜨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볼륨은 좀 높여야 되지만요.
마지막으로 기계적인 불안정함을 보완하고 별도의 분리형 샤시의 전원부를 갖춘
SE 버전이 나온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