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그랬다. 가을에는 브람스를 들어야할 것 같다고.

정서의 차이겠죠. 사강의 소설도 한몫을 했을 테고...

그녀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배경처럼 깔리는 3번 교향곡의 3악장을 사람들은 많이 떠올리는 듯하다.

나는 ‘가을’이라 불리는 4번 교향곡을 중랑천 밤 불빛을 따라 동부간선도로를 달리며

카세트테입이 늘어지도록 들은 적이 있다.

교향곡 4번의 3악장에서 트라이앵글 소리를 뒤로하고

4악장에서 파사칼리아(샤콘느)로 변주해 가는데

삶은 변주되어야 한다는 강한 암시로 듣기도 했다.

브람스의 불멸성은 무었일까?

‘시대의 정신에 최고의 표현을 부여하는 사람’이란, 이상적인 호칭을 달고

스승 슈만에 의해 브람스는 세상에 소개되었다.

베토벤을 의식하여 20년의 세월을 뜸들이다 세상에 내놓았다는

교향곡1번을 들으면 ‘고통을 지나 환희’라는 지적에 수긍이 간다.

1번 교향곡을 들으면 베토벤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느낄 수 있다.

그 이후의 교향곡들은 브람스 특유의 명상적이며 ‘황혼적’ 양식이

가을이라는 계절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듯하다.

3번 교향곡이 체념처럼 전곡을 맺는 것도

만년에 브람스를 지배한 슬프고 음울한 심경을 예감한 것은 아닐지?

3번 교향곡을 작곡할 당시 브람스는 34세나 어린 16세의 슈피나라는 소녀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2번 교향곡은 전악장이 장조로 구성되어 있어 브람스 자신이 한스릭에게 보낸 편지에서

“밝고 사랑스러운 곡”이라고 적고 있다.

들을수록 매력적인 곡이다. 전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브람스는 완성에 도달한 드문 대가이다.

“불멸성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의 강철 같은 자기통제와 훈련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라는 이덕희의 지적에 나는 동감한다.

아이들을 유난히 사랑했으면서도 음악을 위해 독신을 고집했던 브람스!

클라라와의 죽을 때까지 지속된 우정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비트단위로 쪼개어진 브람스의 음악이 도시의 빌딩숲을 지나 접시안테나를 거쳐 우리 귀에 도달하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그것이 너무도 당연시 되는 세상에 살면서

브람스가 이런 세상을 꿈이나 꾸었을까 하고 상상해본다.

음악은 4차윈의 예술이라 했던가?

브람스 음악이 북독일 적인 분위기여야만 한다고 오해를 하지 않는다면

비쉬코프의 지휘도 좋은 선택일 듯하다.

몽롱한 박명(薄明)의 분위기와 비현실적이며 영적 배경을 원했다면

비쉬코프의 연주는 좀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으리라

풍부한 배음과 따뜻한 공간감은 듣기에 좋다.

Ⅰ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Ⅱ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 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즐거운 편지 : 황동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