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짜르트 레퀴엠에 이어 두 번째로 접하게 된 레퀴엠입니다. 베를리오즈는 모짜르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레퀴엠입니다. 그러나 레퀴엠이 가지는 전반적인 느낌(죽음을 앞에 둔 슬픔과 함께 천국의 소망과 부활의 기쁨에 대한 희열)은 동일합니다.

샤를 뮌스가 지휘하고 보스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뉴잉글랜드 컨저버터리 코러스의 합창으로 이루어진 1959년 실황 녹음을 ADD로 RCA가 SACD화한 음반입니다.

1번 트랙 키리에(kyrie)는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아픔을 표현합니다. 잔잔하고 느리며 조용하게 그러나 깊은 두 산을 끼고 큰 강물을 향하여 거침없이 달려나가는 커다란 강물처럼 합창은 어우러집니다.

2번 트랙은 좀더 철썩이며 흘러가는 강입니다. 아픔과 슬픔은 어느새 천국에의 소망으로 환희로 바뀌는 듯 밝고 아름다운 합창이 커다란 폭포수를 이루는 것처럼 장관을 이루며 쏟아 붓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큰 북을 울리며 급하지 않게 금관악기의 포효와 함께 장대한 혼성 합창이 뒤를 따릅니다. 망자 앞에서 이렇게 가슴이 시원해져도 되는 것인지, 부활의 소망을 품고 있는 서양인들의 음악은 역시 동양의 그것과 많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가슴을 시원하게 열어주며 멋진 대미를 장식합니다.

베를리오즈 레퀴엠의 백미는 두 번째 CD에 있습니다. (사실 저는 두 번째 CD만 들을 때가 더 많습니다.) 두 번째 CD가 45분이며 첫 번째 CD는 38분입니다. 두 번째 CD의 첫 시작은 라크리모사(lacrymosa)인데 대규모의 합창단이 뿜어내는 강렬함이 저를 흥분시킵니다. 브래스의 힘찬 고동과 함께 어우러지는 합창은 하늘에서 천군천사들이 내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모짜르트의 레퀴엠보다는 속도감이 현저히 떨어지지만 감동은 음악의 속도감으로 측정하는 게 아니잖습니까? 저는 베를리오즈 레퀴엠을 들을 때 두 번째 cd에 있는 라크리모사만 들어도 그 값어치는 충분히 하지 않았나 생각을 할 정도로 이 부분에 반했습니다. 강렬하면서도 웅대한 이 합창을 꼭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CD의 첫 트랙인 라크리모사만 10분넘게 연주됩니다.

뒤이어지는 음악들도 아름답습니다. 4번 트랙의 상투스(sanctus)에서 노래하는 테너의 목소리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남성의 목소리가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제대로 갖추어진 SACD 멀티 채널로 들으면 어떨까를 생각하며, 그 감동을 조금 더 미래로 살짝 미루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