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와이어 월드의 수입사인 샘에너지에는 와이어 월드의 대표이자 책임 디자이너 데이빗 설츠가 다녀갔습니다. 아울러 시연회도 진행 되었는데요, 사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음악을 듣는 시연회라기보다는 신제품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이었습니다.

이날 진행 되었던 브리핑은 한 마디로 '결국은 음악이다' 라는 말로 요약 할 수 있을 텐데요, 음악을 올바르게 듣는 것 외에는 케이블이 그 어떤 역할이상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죠. 데이빗 설츠 자신 역시 음악이 좋아 케이블 만드는 일이 시작 되었고 굉장한 음악 마니아라는 점을 어필 했습니다. 친구들을 불러 놓고 본인의 집에서 작은 콘서트까지 여는 음악 마니아라는군요.

데이빗 솔츠의 와이어월드의 소개와 2016년에 선보이게 될 신제품, 앞으로 와이어 월드가 계획하고 있는 로드맵을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 이어지고, 이후에는 휴대용 플레이어와 헤드폰으로 와이어 월드의 신제품 라인업을 들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제껏 와이어 월드의 제품이 그래 왔듯 앰프와 스피커만 남고 케이블이 사라지는 효과를 느껴보라는 것입니다. '케이블이 아무 역할을 하지 않고 사라져야 한다'는 의미, 저는 솔직히 잘 이해가 안 갔는데요, 케이블을 제작하고 판매하는 입장에서 '케이블이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다음 날 데이빗 설츠를 만나 보았습니다.

풀레인지(이하 F) : 가벼운 질문부터 해보겠습니다. 한국은 몇 번째 방문이신가요? 한국의 음식은 맛있던가요?

데이빗 설츠(이하 D) : 이번이 두 번째 방문입니다. 4~5년 전에 한 번 왔었습니다. 한국의 분위기가 매우 좋습니다. 음식도 아주 맛있었습니다, 특히 불고기 같은 구워먹는 고기가 맛있습니다.

F : 그 어떤 회사보다 와이어월드의 이름은 직관적이라 생각합니다. 회사 이름을 지을 때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D : 1992년 설립 당시의 이름은 와이어웍스(Wire works)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회사를 등록 하려고 보니 뉴저지에 그 이름을 쓰고 있는 케이블 회사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죠. 모두들 그 이름을 좋아했지만 안타깝게도 차선책으로 와이어월드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케이블의 이미지보다는 장소의 이름 같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차선책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생각합니다.

F : 데이빗의 말 중에 자신을 디자이너라고 표현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디자이너라면 주로 미술 분야의 공부를 한 사람으로 표현하는 편입니다. 데이빗의 말은 제가 생각하는 분야의 디자이너는 아닌 것 같은데요?

D : 영미권에서의 디자이너라 하면 미술 쪽에만 국한하지 않고 기획과 설계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디자인 작업까지도 참여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창작자(Creator)나 감독(Director)에 가깝죠. 엔지니어는 디자이너가 설계해놓은 제품의 오류를 잡는다거나 더 좋은 효율을 위해 최적화를 하거나 업그레이드를 합니다.

F : 일렉트라 7의 파워케이블을 보니 '구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태그를 귀여운 손 글씨로 적어 놓았는데 누구의 아이디어였나요? 그런 소소한 부분들이 굉장히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D : 오, 그랬나요? 저도 몰랐네요. 저 말고도 와이어월드에는 일 잘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마 마케팅 매니저가 해놓은 것 같은데요, 저는 제품 개발에 집중하느라 제가 모르고 있는 부분을 신경 써 준 것 같습니다. 감성적인 부분 역시 제품의 일부라 생각합니다. 돌아가면 칭찬해 줘야겠군요.

F : 지난 시연회에서 한 얘기 중에 '오디오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계기가 카 오디오였다'라고 했는데, 지금도 계속 하고 있는지요?

D : 지금은 카오디오 시장이 굉장히 좁아졌습니다. 그 분야에서 비즈니스가 어렵죠. 지금 타고 있는 차의 카 오디오 시스템은 최악이지만, 차에서 음악을 길게 들을 시간이 없어 그냥 순정 오디오 상태로 듣고 있습니다.

F : 어색함을 없애기 위한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질문을 해보죠. 한국에서는 와이어 월드라면 가격대비 성능이 굉장히 뛰어난 제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외에서의 와이어 월드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D : 해외에서 역시 가성비가 좋은 제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하이엔드 케이블 시장에 거품이 좀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죠. 비싼 인력 좋은 연구진, 최고의 재료로 제품을 생산하니 수긍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케이블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조언을 드린다면 본인의 시스템에 비해 과하게 투자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오디오 쇼에서 보면 하이엔드 케이블이 5만 불, 10만 불씩 하는 게 기본이구요, 그 이상의 케이블도 많지만 저 같으면 와이어월드의 케이블을 사고 오토바이를 하나 사고 싶네요. (웃음)

F : 하이엔드 오디오 시장에서 케이블들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비싸지고 있습니다. 하이엔드 케이블들이 점점 비싸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D : 방금 말씀 드렸지만 아주 비싼 인력과 수준 높은 장비의 투입이겠죠. 와이어 월드도 그런 측정 장비들을 들여온다면 제품 가격이 많이 올라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난번 록키 마운틴 쇼에서 굉장히 유명한 케이블 브랜드의 연구원과 얘기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얘기를 나눠보니 최종 테스트를 아주 고가의 정밀한 기계로 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실제 귀로 듣는 테스트를 왜 거치지 않느냐 물었더니 자신들의 귀는 객관적이지 못하다 하더군요. 결국은 본인의 귀를 믿지 못한다는 거였죠. 하지만 소리는 기계로 측정 못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와이어 월드는 저를 비롯한 스탭들의 귀와 의견이 가장 중요합니다. 완성품이 나왔을 때 많이 들어보고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많이 들려줍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앰프와 스피커의 직결을 통해 비교합니다. 이것은 아주 전통적이고 확실한 방법인데 다른 케이블 디자이너들이 왜 안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와이어 월드에서만 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매뉴얼도 있을 만큼 아주 유명한 방식인데요. 저는 이 작업들이 그 어떤 측정 장비보다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의 귀가 그 어떤 장비보다 정밀하고 정확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F : 데이빗처럼 오랜 기간 소리를 연구한 사람이 아닌, 소리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연구원이라면 자신의 귀보다는 그런 장비에 의존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D :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저도 제 귀가 절대적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모두의 의견이 모아졌을 때 제품이 되는 거죠. 앰프와 직결했을 때 소리와 가장 근접하게 만드는 작업은 충분히 객관적인 작업입니다. 개발자라면 꾸준히 소리를 들어야 하는 공부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개발자에겐 '이미 알고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적이죠. 개인적으로 음반 프로듀서들을 알고 있는데 음반 제작을 수십년 간 해온 그들도, 실제가수가 부르는 소리와 최종 마스터링 음반과 수없이 비교합니다. 케이블 제작 역시 소리를 듣는다는 건 당연한 과정이죠.

F : 네, 그렇군요.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비싼 제품이 좋을 것이라는 편견 역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어제 시연회 때 얘기한 바비 오센스키(Bobby owsinski) 교수의 일화를 다시 한 번 얘기해 주시죠.

D : 바비는 미국에서는 유명한 음향학(音響學) 박사입니다. 그의 저서는 오디오 제작자들에게는 바이블로 통하죠. 소리에 관해서는 그만의 철학이 분명하고 고집도 셉니다. 예를 들어 케이블에 투자 하는 것은 돈 낭비다, 케이블이 소리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잘 못된 생각이다, 등등이죠. 케이블이 소리에 주는 영향에 대해 모든 개발자들이 그의 이론에 반론을 제기 하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바비 교수는 와이어월드의 제품을 알지 못했더군요. 저는 와이어 월드의 모든 제품을 포장해서 바비 오센스키 교수에게 보냈습니다. 얼마 후에 답변이 왔죠. '당신 말이 맞았다. 케이블이 분명 소리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와이어 월드의 케이블은 소리 자체로 순수한 전달을 위한 제품이다' 라고 말이죠. 와이어월드를 접한 이후 그의 저서와 그가 운영하는 웹 사이트에는 조금 변화가 있었습니다. 케이블이 소리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에 대해 말이죠. 바비 교수의 웹 사이트에서 와이어 월드를 소개까지 하더군요.

F : 결국 바비 오센스키 교수가 와이어월드 때문에 자신의 철학을 바꾸게 되었군요.

D : 철학이 바뀐 것까진 아니지만 생각의 변화는 준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어떤 회사는 케이블이 소리를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회사도 있습니다.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현재 매출이 꽤 좋은 굉장히 유명한 업체입니다. 자신들의 케이블이 고역이 밝고 스피드가 빠르다고 홍보합니다. 이들의 홍보와는 다르게 실제로 측정해보면 스피드도 느립니다. 게다가 위상의 왜곡으로 고역이 밝아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것은 넌센스죠. 다시 말하지만 케이블은 전달에 집중해야지 소리의 변화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으면 안 됩니다.

F :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질문일 것 같은데, USB나 HDMI 같은 디지털은 왜 소리에 영향을 줄까요? 이론상 변화를 주는 요소가 없는데 말이죠.

D : 디지털케이블 역시 소리의 변화를 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원래의 신호보다 좋지 않은 신호를 전달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만약 완벽한 디지털 기기가 있고 공기를 통제 할 수 있고 전기신호의 노이즈를 완벽하게 통제 할 수 있다면 디지털 케이블이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렇지 않죠. 원인은 디지털 노이즈인 것 같습니다. 케이블뿐만 아니라 기기 안, 공기 중에도 노이즈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노이즈들 때문에 지터 수치가 문제가 되고, 클럭 장비들이 더욱 정밀해 지는 것 이구요. 논리적으로 디지털 케이블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 달라진 소리를 귀가 느끼고 있잖아요. ‘디지털 케이블이 영향을 주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오디오의 열 가지 중 한 가지를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 때문에 오디오가 달라지는 것이고 재밌는 것이죠.

F : 와이어 월드가 최근 신소재를 많이 도입하는 것 같습니다. OCC 실버나 카본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D : 은(Silver)은 단연코 최고의 소재입니다. 이외에는 모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신호 전달, 결속력 등 모든 면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재료입니다. RCA 케이블에서는 플러그를 카본을 사용했을 때 확실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다른 케이블에도 적용 중이지만 우선은 RCA 케이블에서는 저 자신이 그 변화를 가장 크게 느꼈기 때문에 카본의 사용은 점점 늘게 될 것 같습니다.

F : 마니아들이 음질을 위해 케이블 브릿지(Cable Bridge)같은 액세서리를 이용해 바닥면에서 띄우기도 하는데요. 오디오 마니아들이 행하고 있는 일명 '케이블 공중부양'은 어떻게 보시나요?

D : 케이블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바닥의 진동 때문입니다. 진동은 분명 소리에 영향을 주죠. 라우드 스피커는 엄청나게 진동합니다. 케이블이 바닥에 닿아 있다면 진동에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물론 와이어월드의 케이블들은 충분한 진동 테스트를 거쳤지만 엄청난 진동을 뿜어내는 라우드 스피커의 경우, 진동이 심한 마룻바닥에서는 좋은 방법입니다.

F : 결국 진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긴데요. 그렇다면 케이블 외에 이런 액세서리를 개발 할 계획은 없나요?

D : 물론 계획은 있습니다. 내년 즈음에는 기능도 뛰어나고, 아주 예쁘게 생긴 멀티 탭을 출시 할 예정입니다. 설계나 테스트는 끝났습니다. 다만 대량 생산을 위해 공장을 물색하는 중입니다. 이번 출장도 대만의 공장들을 조금 둘러보고 한국에 오는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와이어 월드는 좋은 케이블을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할 것입니다. 방금 얘기 했듯이 예상치 못한 진동이나 환경이라는 변수에서 액세서리가 도움을 줄 것입니다.

액세서리 외에 앞으로 출시 될 것은 네트워크 케이블을 준비하고 있구요, 주로 제조사들에게 납품 되겠지만 스피커 내부에 사용하는 선재들도 출시 예정입니다.

F : 마지막 질문입니다. 한국의 오디오 마니아들이 와이어 월드 케이블을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D : 어제 시연회에서도 얘기 했지만, 케이블은 그 존재가 없어야 합니다. 가능하다면 앰프와 스피커를 직결해야 하죠. 그게 레퍼런스입니다. 직결해서 앰프에서 보내준 소리를 그대로 전달해 주었는데 사운드가 맘에 안 든다면 앰프나 스피커의 교체를 고려해야 합니다. 케이블로 소리를 잡는다는 것은 잘못 된 생각입니다. 달라진 소리를 들려주는 케이블이 좋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물론 비싼 돈을 들였는데 확 달라진 소리를 들려주는 게 기분에는 좋겠죠. 하지만 제 생각은 케이블은 아무런 역할을 하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해 케이블은 신호를 고스란히 전달해야지 소리를 변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앰프와 스피커를 직결 했을 때 나는 소리가 케이블을 거쳤을 때 그대로 나야 합니다. 와이어 월드는 그것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전원에서 스피커까지 소리를 온전히 전달하는 것, 그것 외에는 소리를 원래의 신호보다 더 좋게 들려주려는 불필요한 노력은 하지 않습니다. 그 점을 꼭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얼마 전 이사 때문에 피아노를 옮기면서 조율하시는 분을 만났는데 음을 맞추는 튜닝기를 안 들고 일을 하시더군요. 음을 대충 맞추는 게 아닌지 조금 걱정 돼서 '선생님, 튜닝기로 조율 안하시나 봐요?' 물었더니 처음에는 '이 일을 40년 하다 보니 기계보다 내 귀가 정확하다'며 너스레를 떨다가, 나중에 차분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튜닝기계는 어느 정도의 오차 범위를 허용한다고 설명해 주시더군요. 게다가 기계로는 피아노 현의 이물질이나 해머의 부식은 찾아내지 못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내 머리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인간계를 벗어난 듯한 조율사 선생님의 머리에서 후광(?) 같은 것 까지 보이더군요.

조율사가 말하는 기계의 오차는 제 귀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신의 영역(?)이겠지만, 그 말을 듣고 나니 데이빗 솔츠의 귀 역시 그 어떤 장비보다 믿음직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데이빗 설츠 이후의 젊은 개발자들이 측정 장비에 많이 의존 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아쉬움이 좀 남습니다. 마치 동네시장 어귀에서 60년간 설렁탕만 끓여주시던 할머니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에겐 체인점 설렁탕밖에 선택지가 없는 우울한 현실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