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GO“의 뜻을 아시는가. ”Garbage In, Garbage Out,” 즉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는 말이다. IT 나 통계학에서 미가공 데이터(raw data)의 중요성을 말할 때 통용되는 재미있는 표현인데 80년대 영국의 한 오디오 평론가가 이 말을 사용하면서 일상적인 오디오 용어가 되었다. 오디오 시스템에 투자할 때 소스 기기가 차지해야 하는 비중을 높아야 함을 주장할 때, 혹은 제 아무리 시스템이 좋아도 소프트가 저질이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시스템과 소프트가 모두 훌륭해도 듣는 사람의 음악적 자질이 부족하면 좋은 오디오가 내어주는 좋은 소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말도 된다. 아날로그에서 GIGO를 주장하는 것은 LP 소릿골로부터 음악정보를 직접 뽑아내는 카트리지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이리라. 일반 사람들, 소위 “민간인”이 이해할 수 없는 수백만 원짜리 카트리지가, 옛말로 하자면 ”전축바늘“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필자는 70년대 말에 파이오니아 PL-41 턴테이블과 오르토폰 카트리지로 아날로그를 시작했고 이후 대부분의 세월을 오르토폰, 그중에서도 SPU와 함께 해왔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의 저명한 평론가 말마따나“수중에 SPU가 없으면 불안”했다. 지금은 여섯 개의 SPU를 소유하고 있는데 A 타입 2개, G 타입 2개, 트랜스가 내부에 들어가 있는 GT 타입 2개 등이다. 모두 다른 소리를 내어주는데다가 매칭 턴테이블, 톤암, 포노앰프 조합에 따라 최신 카트리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소리를 만드는 재미가 있으니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 레코딩 레이블에 따라 적합한 모델이 있고, 음악의 장르에 따라 매칭이 좋은 모델도 있다. 필자는 그것도 모자라서 SPU와 함께 EMT 계열 두 개 (XSD 15, 토렌스 MCH-II), 데논 계열 세 개, 그리고 이케다에 직접 주문해서 얻은 귀한 9REX 1개를 더 갖고 있다. 카트리지가 많아도 너무 많다.

그동안 SPU로 정말 많은 실험을 해보았다. 90년대 초 G 타입 헤드셀 상부에 묘한 재질의 금속 테이프를 붙여 사용하는 방법은 일본에서 국내로 전파되어 오디어파일 사이에서 꽤 유행했던 튜닝이었는데 무대의 배경을 말끔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뒤를 이어 유행했던 SPU 카트리지 캔틸레버와 보디 사이에 고무막을 제거하는 일은 또 어떠한가? 소리를 개방적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었는데 SPU 특유의 답답함을 없애는 극적인 변화에 흥분했던 기억이다. 최근까지도 SPU 사용자들에게 통용되는“장난질”이다.

거기에 SPU 알을 까서 사용하는 것은 또 어떻고? SME V 암과 SPU를 “합방“시키는 단 하나의 방법이었는데 필자는 90년대 말 오라클 프리미어 턴테이블에 SME V, SPU 로열 누드를 조합해서 정말 많은 LP를 만족스럽게 들었다. 톤암과 누드 카트리지 사이에 넣어주어야 하는 스페이서를 흑단으로 만들어서 소리 튜닝을 했던 기억도 있다. SPU 누드 카트리지를 이케다의 묵직한 카트리지 셀에 끼운 뒤 FR64S에 매칭해서 고풍적인 소리를 내어보기도 했고 나중에는 마이스터 실버 모델의 음상을 키우기 위해 내부 마그네트를 특주해서 바꾸기도 했다. 4개를 직렬 연결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마그네트 개수를 가감할 때 변화하는 가우스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를 탐구했었다.

이 모든 노력이 사실 따지고 보면 SPU가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100% 만족하지 못했음에 기인한다고 고백한다. 필자의 다양한 실험은 결국 SPU의 부족한 2%를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나 할까. 이런 고민을 하는 SPU 애호가가 필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르토폰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일부 오디오파일들이 멀쩡한 SPU를 계속 알을 까서 사용하니까 SPU 로열 시리즈에 이르러서 누드 버전을 따로 만들어 소개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90년대 초반 MC6000 시리즈로 시작해서 쥬빌리, 윈필드, 그리고 최근 A60에 이르는 플래그십 고급 라인의 명맥을 유지하면서 SPU와는 다른 성향의 소리를 만들어 오디오파일들에게 소개해왔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소개하는 엑스프레션 모델은 오르토폰이 사상 처음으로 SPU와 플래그십 라인을 완전히 융합시킨 하이브리드 버전을 소개하는 경우라고 하겠다. 즉 헤드셸과 카트리지가 통합되어 디자인이 완성된 SPU 시리즈의 편의성과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기존 플래그십 라인 제품인 A60 카트리지의 최신 기술이 추구하는 현대성을 조화시키는 제품 기획이라고 할 것이다.

스펙을 살펴보면 일단 카트리지에서 가장 중요한 증폭부의 기술 및 부품이 기존 플래그십 A60과 동일하다. 엑스프레션의 보론 캔틸레버, 레플리컨트 100 다이아몬드, 네오디늄 마그네트 등은 모두 A60에 채용된 오르토폰 최신 기술들인 것이다. 여기에 매우 정교하게 디자인된 바디를 조합하고 있는데 스테인리스 분말로 마감한 고급스런 재질로 만들어져 있다. 0.3mv 아웃풋 전압에 4옴 임피던스로서 다양한 트랜스 및 포노앰프와 매칭하기에 수월한 스펙이라고 하겠다. 카트리지 높이, 오버행이 SPU와 동일하고 무게도 비슷해서 조정하기 어렵지 않다고 하겠다. 적정침압은 2.6그램으로 되어 있는데 사용자의 취향, 사용하는 톤암의 성격에 따라 0.5g 정도 가감은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된다.

필자가 구동하고 있는 다양한 아날로그 셋업에 매칭해서 들어볼 수 있었다. 필자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기기는 토렌스 124-2, 독일 dps 턴테이블, 마이크로 세이키 1500VG (진공흡착식) 턴테이블에 SME 3010R 골드, FR64S, 오르토폰 RS212D, 오르토폰 AS309i, SME V, 네임 아로등의 톤암, 포노앰프는 SME SPA-1HL, 럭스만 E-06, 김태성 오디오 소네트 포노단등이다. 프리앰프는 첼로 팔레트 MIV와 첼로 에튜드 어테뉴에이터, 일본 파이널 연구소의 건전지 구동 프리앰프를 사용하고 있다. 스피커, 앰프는 파이널 오푸스 혼 스피커에 골드문트 Job300 모노블럭앰프이다.

일단 엑스프레션의 첫인상은 턴테이블이나 톤암 성격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SPU의 경우 어디에 붙여놓아도 SPU 기본 소리성향을 내어 주는데 비해 엑스프레션은 매칭기기에 구체적이면서 민감하게 반응한다. 몇 년 전에 사용했던 쥬빌리는 이토록 턴테이블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그래서 엑스프레션은 사용자의 내공이 요구되는 카트리지일지도 모른다. 필자의 시스템 중에 엑스프레션과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은 dps 턴테이블, FR 64S 톤암과의 매칭이었는데 우선 dps의 아크릴 재질 플래터와 상성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FR 톤암 특유의 묵직함, 안정감과도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인상을 준다.

반면 마이크로 턴테이블과는 잘 맞지 않았는데 다소 차가운 소리를 내어준다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마침 매칭한 오르토폰 RS212D 톤암도 일본색이 워낙 짙은 소리를 내어주니 설상가상이라는 기분이었다. 토렌스 124와 SME 3010R과의 조합에는 교과서적인 건실함이 있었다. SPU보다 훨씬 민감한 카트리지임에도 불구하고 토렌스 특유의 베어링 노이즈가 소리에 덜 묻어 나온다는 느낌을 주어 놀랐다. 기계의 매칭이란 요상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본격적인 시청은 dps 턴테이블/FR64S 톤암 조합으로 하기로 했고 시네마그(Cinemag) MC 트랜스에 SME 포노앰프 MM단을 연결하였다.

두 앨범을 집중적으로 들어보았는데 그 첫 디스크는 코다이 관현악집이다. 필하모니아 헝가리카를 도라티가 지휘한 레코딩이다. 도라티가 머큐리 리빙 프레젠스 레이블에서 1956, 1958년에 녹음한 코다이 레코딩이 더 유명한데 본 시청에 사용한 음원은 1974년 데카 레코딩(DECCA SXLM 6665)이다. 당시 도라티와 필하모니아 헝가리카는 데카에서 하이든 교향곡 전집을 녹음하고 있었는데 같은 시기에 짬을 내서 이루어진 코다이 녹음에서는 조국 최고 작곡가의 음악을 연주하는 뮤지션들의 즐거움이 묻어나오는 훌륭한 연주를 들려준다.

이들 뮤지션 중에 적지 않은 사람은 코다이에게 직접 음악을 배운 제자들이리라. 그들에게 하이든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작업이 “일”이었다면 같은 시기, 같은 레코딩 장소에서 코다이 음악을 녹음하는 작업은 “놀이”였을거라는 생각이 드는 연주이다. “Dance of Galanta”에서 들려주는 현란한 관현악의 향연, 완벽한 딕션으로 이끌어가는 앙상블에 새삼 놀라게 된다. 당시 신예 레코딩 엔지니어 콜린 무어푸트가 잡아낸 70년대 최고의 테카 사운드이다.

코다이 앨범을 들어보니 엑스프레션 카트리지 특유의 현대성이 부각되는데 데카 사운드 특유의 중저역 부밍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컨트롤 해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목관 앙상블의 디테일을 선명하면서도 화려하게 그려내는 점도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내성부 멜로디 흐름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 대목이 SPU 계열 카트리지와 가장 변별이 되는 신예 엑스프레션의 장점이라고 하겠다. 엑스프레션이 아직 신제품이라 몸이 풀리지 않았는지 스트링 앙상블에서 자연스러움은 SPU보다 덜했지만 이는 에이징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라서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오르토폰에서 지정한 침압보다 정확히 0.2 그램 더 주었을 때의 소리가 필자의 취향에 가장 들어맞는 소리였다.

또 하나의 레퍼런스 음반으로 들어본 LP는 제임스 르바인이 지휘한 말러 1번 교향곡 (RCA ARL1-0894). 런던 교향악단 지휘 1975년 녹음이다. 르바인은 대타 지휘자로 신시내티 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 말러 2번 교향곡을 지휘하면서 센세이셔널한 데뷔를 한 바 있다. 당시 소프라노 솔로이스트는 무명의 흑인 여가수 캐틀린 배틀인 것도 재미있는 사실. 그 연주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르바인은 RCA 레이블에서 말러 전곡 녹음을 계약하게 된다. 당시 RCA는 말러 전집 사이클이 카탈로그에 없었던 유일한 메이저 레이블이었다. RCA가 거물 프로듀서 찰스 게르하르트, 당대 최고 레코딩 엔지니어 봅 오거를 투입시킨 첫 녹음이 바로 1번 교향곡 레코딩인 것이다.

녹음으로나 해석으로나 르바인 최고의 연주이고 뒤를 이은 르바인의 말러 레코딩은 이만한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게르하르트가 프로듀스한 유일한 르바인 말러 녹음이기도 하데 그가 계속 르바인의 말러 레코딩을 프로듀스 했었다면 어떠했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솔티, 하이팅크, 큐벨릭과 어깨를 나란히 한 70년대 최고의 말러 레코딩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르바인은 2번과 8번은 녹음도 하지 못한 채 80년 시카고 교향악단과 7번 녹음을 마지막으로 말러 레코딩을 접어버렸다.

이 앨범을 들어보니 엑스프레션은 런던 교향악단 특유의 아름다운 소노리티를 진솔하게 그려내면서도 르바인 특유의 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박자 비팅을 적확하게 들려준다. 런던 교향악단의 풍윤한 스트링의 울림이 적절하게 과장해서 연출하는 대목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러면서도 기대 이상의 즉물적인 표현에 놀랐는데 예를 들어 1악장 중반부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레코딩 세션을 편집한 대목까지 잡아내어 주는 대목은 놀라웠다. 이게 과연 음악 감상을 위해 독이 되는지 약이 되는지는 사용자가 판단할 문제이리라.

관악 연주시 악기 주위의 공간감도 잘 표현해서 스테이지의 깊이가 잘 나온다. 게르하르트 특유의 클라이맥스 표현, 즉 기계수치 데시벨이 솟아오르는 포르테가 아닌, 울림의 농도와 포만감으로 표현하는 포르테를 잘 연출해서 드러내주었다. 이 대목에서 대부분의 SPU가 다소 아찔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엑스프레션은 이를 잘 소화해냈다. 리뷰를 위해 1악장만 들으려다가 결국 앨범을 모두 듣고 말았다. 그만큼 듣는 이를 음악에 몰입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말도 된다.

오르토폰의 신작 카트리지 엑스프레션은 하이브리드이자 새로운 시도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SPU와 기존 플래그십 라인 제품의 장점을 하나로 모으는 첫 작업이라고 하겠다. SPU 특유의 두터운 음, 강력한 사운드를 즐기는 사람들이 과연 신작 엑스프레션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궁금하다. 또한 오르토폰 플래그십 제품의 현대적 사운드를 즐기는 이들에게 엑스프레션의 강력하면서도 거센 억양이 어떤 인상을 줄 것인가도 궁금하다. 필자는 매우 쓸모가 많은 카트리지라고 판단했는데, 엑스프레션의 장점이 관현악의 복잡한 소리 구조, 오케스트라 구성악기의 다채로운 색깔을 잘 표현하는데 더할 나위 없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