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VAC MD-300B
300B에게 보내는 황금같은 트리뷰트
노부 시시도와 300B
조선 말기 순종이 나라를 잃은 슬픔에 식음을 전폐하던 중 대령숙수가 만들어낸 소고기탕을 먹고 눈물을 흘렸다. 당시 대령숙수가 순종에게 전한 소고기탕을 끓여내는 것을 과제로 낸 21세기 요리 경연대회. 주인공 성찬은 예상치 못했던 에피소드를 겪으며 결국엔 대령숙수의 소고기탕을 끓여내는데....할아버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손자 성찬에게 요구했던 양지삼겹은 힌트가 되어 고스란히 경연 우승으로 이어진다. 할아버지가 마지막까지 먹고싶어 했던 삼겹은 돼지고기 삼겹살이 아닌 소고기, 정확히는 양지삼겹이었다. 성찬은 꺽이지 않는 민족의 기상 토란줄기와 들불처럼 일어나는 민족의 정신력 고사리 그리고 조선의 민초를 상징하는 소고기를 재료로 탕을 끓여낸다. 대령숙수가 식음을 전폐하던 순종에게 바친 것은 오늘날 ‘육계장’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소고기탕이었다. 다름 아닌 영화 ‘식객’의 이야기다.

일본의 야마가타 현에 위치한 WAVAC 은 유즈로 이토(Yuzuru Ito)가 운영하고 있는 진공관 앰프 전문 메이커다. 수십 년 동안 일본 자국 내에서 독자적인 진공관 앰프를 만들어내고 있으며 현재는 그 뛰어나며 독창적인 이름이 알려져 영/미권에도 디스트리뷰터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천재적인 진공관 앰프 설계자인 노부 시시도(Nobu Shishido)가 있었다. 노부 시시도는 새로운 설계의 300B 싱글 앰프를 설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말년을 보냈다. 마치 죽음을 목전에 둔 상태에서 양지삼겹의 맛을 탐하듯 최고의 300B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심했다.
마침내 그는 IITC, 즉 'Inverted Interstage Transformer Coupled' 라는 서킷 디자인을 개발해냈다. 이 기술은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기술이다. 드라이버단과 출력단 사이엔 랜스포머가 사용되며 1단, 2단 증폭 스테이지 중간에는 대게 커패시터가 사용된다. 이 커패시터는 진공관 외에 음질 튜닝에 있어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300B 싱글 앰프 마니아들은 이 커패시터를 교체하며 음질적 변화를 즐기기도 한다. 노부 시시도는 이 커패시터를 제거한 다이렉트 커플링 방식 설계를 시도했고 이것을 IITC 라는 테크놀로지로 완성시킨다. 커패시터를 제거하고 이에 최적화된 설계를 지칭하는 IITC 로 인해 착색은 물론 디스토션을 현격히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하이엔드 솔리드스테이트 앰프에서도 그렇듯 다이렉트 커플링 방식 설계는 매우 높은 품질의 부품들을 요구한다. 300B 싱글에서는 특히 트랜스포머의 품질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자체적으로 트랜스포머를 감기로 한다. 그러나 이 와중에 슬픈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노부 신시도가 새로운 300B 앰프를 만들기 직전 1998년 세상을 하직하게 된 것. 필생의 역작을 완성해내기 직전 노부 신시도의 죽음 앞에 이를 출시하기로 했던 WAVAC 입장에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WAVAC MD-300B
다행인 것은 슬픔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던 당시 WAVAC 의 대표이자 유즈로 이토는 노부 신시도의 설계를 그대로 살려내 300B 앰프를 제작, 출시하기로 결정한다. 마치 성찬의 할아버지가 죽기 전 건넨 마지막 힌트를 성찬이 이어 받아 최고의 맛을 만들어냈듯 유즈로 이토는 노부 신시도가 죽음 직전까지 완성하려했던 설계를 바탕으로 필생의 소리를 되살려낸다. 그 앰프가 바로 WAVAC 의 MD-300B 로 일본은 물론 영국과 미국 등지에서도 300B 최고의 명기 중 하나로 불리며 여러 오디오파일로부터 칭송을 얻어내고 있다.
노부 신시도의 유작 MD-300B 는 베일에 싸인 커다란 트랜스포머를 중심으로 고요히 불빛을 내뿜은 300B 진공관이 싱글 엔디드 방식으로 작동한다.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신호를 각각의 진공관이 나누어 담당하는 푸쉬풀 방식보다 출력도 작고 다이내믹스는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 청아한 소리는 전 세계에 컬트 팬을 만들어낼 정도로 독창적인 소리를 담고 있다. 그 앞으로는 6Y6 진공관이 2차 증폭 스테이지를 담당하며 3극 트라이오드 모드에서 드라이브 진공관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1차 증폭 스테이지, 즉 초단관이 위치한다. 이것은 12AT7 진공관으로 입력 스테이지로부터 전달받은 신호의 최초 증폭을 담당한다.
전면부는 매우 잘 다듬어진 목제 패널이 고즈넉한 목가적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마치 유니슨 리서치의 그것을 연상시키지만 매우 단단하고 짙은 색상을 지니며 반듯한 인상으로 수공명품의 이미지를 깊게 풍긴다. 좌측엔 커다란 금빛 전원 스위치가 위치하며 그 옆에 작은 인디게이터가 반짝여 전원 ON/OFF을 알린다. 우측으로는 삼각형의 셀렉터와 볼륨이 마치 곱게 빚은 전통과자 같은 모습으로 예쁘게 장착되어 있다.
후면은 매우 단출한 입/출력단이 가지런히 늘어서있다. 입력단은 모두 언밸런스드 입력 형태로 총 세 개의 RCA 단자가 마련되어 있으며 스피커 출력 터미널이 한 쌍 보인다. 맨 우측으로는 전원 입력 소켓이 하단에 장착되어 있다. 내부 전원부엔 DC 필터 회로가 설계되어 있다. 이것은 진공관의 필라멘트에 최대한 깨끗한 플레이트 전류를 흘려주기 위해서 특별히 설계된 회로다. 또한 전원 품질로 인한 노이즈를 최소화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설계된 실리콘 다이오드 정류 서킷이 포함되어 있다. 채널당 10와트라는 저출력 300B 싱글 진공관 앰프에서 주로 문제가 되곤 하는 진공관 포닉 노이즈와 험을 최소화기 위한 특별한 조치들이다. MD-300B의 S/N 비가 80dB 로 현대 하이엔드 앰프만큼 높진 않지만 고능률의 혼 스피커에서도 매우 조용한 작동을 보이는 이유다.
재미있는 것은 또 있다. 고역대역의 주파수 한계가 무려 50kHz 에 달한다는 WAVAC 의 설명이다. 이것은 매우 좁은 주파수 범위와 다이내믹 레인지를 갖는 것으로 알려진 300B 싱글 앰프에는 어울리지 않는 광대역이다. 최고 품질의 자체 트랜스포머 그리고 IITC 라는 다이렉트 커플링 설계에 그 비밀이 숨어있다. 게다가 최소의 신호경로를 통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증폭 음질을 위해 프리앰프가 패시브로 설계되어 있다. 게인 스테이지와 버퍼 회로를 따로 설계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노부 신시도가 말년을 이 앰프의 설계에 집요하게 매달린 것은 전혀 헛되지 않는 것이다.
셋업

MD-300B 의 성능과 음질을 테스트하기 위해 공수한 스피커는 오데온이다. 국내 오디오파일 사이에서는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혼 스피커 계에서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비범한 스피커다. 그 중에서도 이번에 MD-300B와 짝지어준 오데온은 2웨이 저음 반사형에 고역에 18cm 구경의 혼을 달고 있는 노바라는 모델이다. 공칭 임피던스 8옴에 스피커 밑바닥에 포트가 뚫려 있고 특히 능률이 91dB 로 충분히 높아 출력이 낮은 300B 싱글 앰프에는 최고의 매칭 상대가 된다.
성능 및 음질

음악에 스트레스가 없는 경지는 보편적인 하이파이 기기에서는 구현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다. 해상도가 좋아 악기 음색이 디테일하게 펼쳐지면서 동시에 피곤함이 없어야한다. MD-300B 와 오데온 노바 그리고 아톨 시디피가 들려주는 소리엔 일체의 피곤함이 없다. 무대 중앙에서 노래하는 레베카 피존의 보컬 음촉은 마치 깊은 산골에 흐르는 시냇물처럼 청산유수다. 일체의 거리낌이나 딱딱한 기운이 없이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그러나 노련하게 노래한다. 스피커의 혼이 맑게 쭉 뻗어내는 중, 고역은 눈을 감고 들어도 단박에 진공관 300B 싱글의 순도 높고 청순한 음을 알아챌 수 있게 만든다.

에밀리 클레어 발로우의 보컬은 매우 상쾌하게 탁 트여있다. 대역 한계로 인한 어둡고 둔한 느낌은 어디에도 없이 낭랑한 목소리가 생생하게 숨 쉰다. 혼을 채용한 오데온에 더해진 300B 의 투명한 울림은 자극이 없으며 매우 맑게 그러나 자연스러운 디테일을 온전히 모두 스피커 밖으로 토해낸다. 벨벳 같은 촉감이 손에 잡힐 듯 한 산뜻한 그립감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드럼을 문지르는 브러시 소리가 무척 부드럽게 귀를 적시며 브러시의 손놀림이 눈에 보일 듯하다. 뭔가 딱딱하거나 건조한 소리 알갱이는 전혀 느껴지지 않으며 온기와 부드러움이 돋보인다. 슬며시 그러나 풍부하고 한없이 포근한 질감에 입에 침이 고인다.
최근 단단하게 조여진 광대역에 홀로그래픽 음장을 그려내는 하이엔드 스피커에 길들여진 채 오랜만에 접하는 300B 는 더 이상 음악을 분석하지 않게 만든다. 마치 등산 후 한 숨을 돌리면 깊은 산 속에서 마시는 약수 한 잔처럼 정신을 맑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 신호를 일부가 생략되어 텅 빈 입자감이 두드러지거나 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현대 하이엔드 시스템의 광대역에는 다다르지 못하지만 반대로 가청 대역에 더욱 충실하다. 기음과 배음의 조화에서 느껴지는 코히어런스는 음악 안으로 거침없이 자신을 내던지게 만든다. 로시니의 [Una Larme] 레코딩이 이토록 아름답고 청순한 음색을 가졌는지 미처 몰랐다.
MD-300B 가 만능 앰프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매우 특별한 삼극관을 사용한 저출력 앰프며 다이내믹레인지에 엄연히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지 오우에가 지휘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들어보니 예상을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MD-300B 의 대역 한계과 다이내믹레인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매우 빠른 스피드가 놀랍다. 또 다른 차원의 심포니 재생 특성을 들을 수 있다. 위/아래로 가청 대역 밖으로 한없이 확장시킨 광대역은 이 앰프에겐 관심 밖이다. 대신 너울거리는 악기의 텍스쳐, 무대에 편안하고 풍부하게 펼쳐놓는 악기들의 자연스러운 하모니, 음악을 더욱 음악답게 만드는 유려한 하모닉스, 배음은 음악 재생에 있어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강, 약의 구분이 매우 크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명쾌하고 컨트라스트가 짙은 쾌감을 유발하지 않지만 대신 불편한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코플랜드 'Appalachian Swing' 같은 커다란 다이내믹레인지를 가진 레코딩에서 웅장한 저역은 축소되어 있지만 부밍도 없고 매우 맑고 여유롭게 음악을 재생한다. KT88, KT120 같은 진공관으로 푸쉬풀 구동한 소리가 짙은 유화라면 MD-300B 가 그려내는 소리는 마치 수채와나 한 편의 수묵화를 떠올린다. 하드 록이나 헤비메틀 또는 전자음악을 듣기 위해 이 앰프를 구입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웬만한 팝이나 록 음악을 크지 않은 음량으로 즐기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트리뷰트
싱글 300B 는 출력관 특성과 설계로 인한 좁은 스피커 커버리지 덕분에 고능률 스피커와 매칭하는 것이 상책이다. MD-300B 의 놀라운 점은 고능률 스피커에서 300B가 만들어내는 문제점인 노이즈와 험이 매우 낮아 무척 고요한 배경을 갖는다는 점이다. 거기에 더해 출력관의 한계를 극복한 듯 대단히 민첩하고 일관적으로 빠른 스피드를 전 대역에 걸쳐 구사한다. 호기심 삼아 곁에 있던 캐리 300B 앰프와 비교해보니 그 특성이 더욱 명확하게 대비되어 드러난다.

300B 앰프 치고는 우렁차고 커다란 무대, 골력이 뚜렷하고 힘이 넘치는 소리를 들려주는 캐리. 한편 MD-300B 는 소박하고 오밀조밀하게 그리고 따스한 음색을 중심으로 담백하고 짜임새있는 음악을 들려준다. 자신만의 색깔이 매우 뚜렷하며 고역에 노부 시시도가 의도했는지도 모를 예쁜 색감이 반짝인다. MD-300B 는 유즈로 이토의 WAVAC 이 단 한 사람, 노부 시시도와 300B에게 보내는 황금 같은 트리뷰트다.
Written by 칼럼니스트 코난
Specification
Power Tube : 300B Effective Power output : 10 watts per channel Frequency range : 40Hz-50KHz Input sensitivity : 1.0Vrms Input impedance : 100k ohms S/N ratio : 80dB Power consumption : 250 watts Power supply : 100,110,120,220,230,240 VAC 50-60Hz (selected when shipped) Load impedance : 8(4/16) ohms External dimensions : 265Wx420Dx200H(mm) Weight : 17k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