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오디오를 선호하는, 나이 지긋한 애호가들에게 요즘 잘 나간다는 오디오 시스템의 음향을 들려주면, 음악성이 부족하다고 투덜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면 필자는 이렇게 물어본다. “뭐가 문제입니까?” 답변은 이렇게 돌아온다. “깔끔한 것 같기는 한데, 그윽한 맛이 부족하다. 그리고 단조롭고 인위적인 냄새가 난다.” 그러면 이런 질문도 던져 본다. 좋은 않은 반응이 나올 것을 짐작하고 말이다. “혹시 귀하께서 들으시는 오디오 시스템이 너무 노둔한 것은 아닐까요? 신호에 대한 반응이 느리고, 전체 색조가 어두운 것은 아닐까요?”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질문에 대한 반응은 그리 좋지 않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싶겠지만, 프랑스의 신생 메이커 아톨의 앰프 세트를 감상하면서, 빈티지 오디오 애호가들은 HD120과 MA100 앰프 세트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의문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또 하나! 요즘 기기 가격을 기준으로 중저가 인티그레이티드 앰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프리와 파워 앰프 분리형 세트라니, 이건 또 무슨 일일까? 혹시 뭔가 달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발동한 탓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개 발에 편자일까?

혹시 폼만 잡는 게 아닌가 싶어서, HD120과 MA100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런데 관찰의 결과로 돌아온 것은 이 가격대로 이런 형식과 내용을 갖추고 앰프 세트를 내 놓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더 큰 의문이었다. 먼저 프리앰프부터 살펴보면, HD120은 아날로그 입력 2계통 외에도, 하이 레졸루션에 대응하는 디지털 입력 3계통― 동축은 32비트/384kHz, 광 입력과 USB 접속으로는 24비트/192kHz ―을 구비하고 있으며, 여기에 블루투스 접속으로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에 담긴 디지털 음원까지 재생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아날로그 디스크 재생을 위한 포노 이퀄라이저를 탑재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질 정도이다.

본격 애호가들의 관심을 제대로 끌기는 파워 앰프 MA100 또한 마찬가지이다. 60만 원 전후의 가격표를 달고 있는 제품이라고 하기에는 예사롭지 않은 콤팩트하면서도 당찬 모양새가 눈에 들어온다. 4밀리미터 두께의 알루미늄 소재의 패널은 ― 검정색과 은색 두 가지가 있다 ―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고, 섀시에는 1.5밀리미터의 강철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증폭 소자로는 한 채널에 MOS-FET 트랜지스터를 싱글 페어로 사용하고 있으며, 170VA의 토로이달 트랜스를 탑재하고 있다. 출력은 채널당 60와트(8옴), 80와트(4옴)이며, 주파수 응답특성은 5Hz~200kHz이다. 마지막으로 모노럴 페어로 사용할 수 있는 스테레오/모노 브리지 모드를 구비하고 있다.

이만한 구성과 스펙이라면, 본격 앰프의 구색은 모두 갖추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이들 기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저렴한 가격이다. 프리앰프와 DAC, 그리고 파워 앰프를 조합한 세트를 200만 원에 한참 못 미치는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것은 요즘 같은 시절에는 거의 ‘득템’ 수준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이 정도의 가격이라면 인티그레이티드 앰프로 내 놓은 것이 여러 모로 좋을 텐데, 굳이 분리형 세트를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바로 이것이 현자(賢者)의 지혜라고 할 만하다. 오디오 애호가의 성향과 욕구를 분명하게 인지한 토대 위에서 제품을 기획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과정에서 통합과 분리의 전략을 절묘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첫째, 분리형 앰프 세트가 들려주는 본격 음향을 경제력이 그리 높지 않은 애호가에게도 즐길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은 충분히 긍정할 만한 일이다. 다시 말하면, 분리형 앰프 세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음색의 표정과 농밀도, 안정감, 구동력 등의 다채로운 변화를 초보 애호가들이 경험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는 것이다.

둘째, 풍부한 디지털 입력을 프리앰프에 통합한 것은 고해상도 포맷 재생이라는 최신 조류를 적극 수용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별도의 DAC를 구입하지 않고도 고해상도 디지털 파일을 재생한다는 것은 차세대 프리앰프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이 시스템으로 구동하는 스피커 여하에 따라 파워 앰프를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용상의 편의성이 한층 높아진다.

넷째, 엔지니어링의 관점으로 보아도 디지털 입력을 탑재한 프리앰프와 파워 앰프를 분리한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고용량의 전원 트랜스를 탑재한 파워 앰프와 프리앰프를 분리함으로써, 디지털 음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요소를 원천 차단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HD120 ‧ MA100 세트가 들려주는 음향은? 앞에서 저렴한 가격 때문에 ‘득템’이라고 했는데, 음향의 완성도로 전선(戰線)을 확대해 보면 이건 차라리 ‘횡재’라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이 세트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파워 앰프인 MA100이 보여 주는 강력한 구동력이다. 이번 시청에 동원한 스피커는 펜오디오의 2웨이 북셀프 모델인 센야였는데, HD120 ‧ MA100 세트는 제품의 등급으로 보나 기술 내용으로 보나 최소한 두세 단계 이상인 센야를 여유 있게 구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동급 기종과 비교해 보면, MA100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힘이 넘치는 자연스러운 발성과 밝은 색조, 그리고 음악을 촉급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적절한 템포이다. 그리고 상하 대역의 균형은 아주 탄탄하고 잘 잡혀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음향 윤곽과 선율선의 흐름 또한 과부족이 없는 적절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다음으로 HD120을 살펴보면, 이 기기에서 가장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애매함이나 모호함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명료한 음색, 절도 넘치는 리듬과 다이내믹, 그리고 청명함이 살아 있는 공간감을 아톨 특유의 청명한 음향 무대에 깔끔하게 용해하는 모습이다. 한 마디로 어떤 장르의 음악을 재생해도 흐릿한 구석이 전혀 없는 명쾌한 표현을 이끌어 내는 기기가 HD120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러나 HD120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치는 DAC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시청에서는 필자가 레퍼런스로 사용하는 소닉 스튜디오의 컴퓨터 뮤직 플레이어 아마라를 USB 접속으로 연결하는 방식과 필립스의 구형 CD 플레이어인 LHH700에서 아날로그 출력과 디지털 동축 출력을 HD120와 연결하여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LHH 700의 아날로그 출력에서도 그 나름의 견실한 음향을 이끌어 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필자의 감각을 아연 긴장하게 한 것은 디지털 출력을 HD120과 연결했을 때였다. 특히 USB 입력에서 HD120은 균형감이 뛰어난 상하의 대역 밸런스를 바탕에 깔고, 간결하면서도 절도가 넘치지만 그 나름의 유연성을 간직한 밝은 색조의 음향을 연출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상에서 아톨의 HD120과 MA100 앰프 세트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한 대로 이 앰프 세트는 최신 오디오 조류에 거의 완벽하게 대응하는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득템’이라고 할 수 있고, 음향의 완성도에서는 현대 음향이 추구하는 밝은 색조와 간결한 음향 조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횡재’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는 것이 필자의 결론이다.